<사랑은 ♥모양이 아니다> 전시는 호작과 정우물 두 작가가 각자 받았던 편지들을 꺼내보며 다시 한번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되짚어 본다. 보통 사람의 심장 모양을 닮은 ♥모양을 사랑으로 표현하지만,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편지의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상상을 그림 속에 담았다.
편지는 인스턴트 메신저처럼 간단하지 않다.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솔직한 감정을 편지에 담기 위해 한줄 한줄 고심하는 과정을 거친다. 편지에 담긴 내용은 고민을 거쳐 수정되고, 정돈되어 만들어지지만 안에 담긴 것은 진심이 가득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시시콜콜한 말들을 쓰고 나름대로 꾸미고 접어 전달한 작은 마음부터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장문의 편지까지, 편지를 매개로 받았던 사랑을 <사랑은 ♥모양이 아니다> 전시를 통해 답장한다.
우리가 받았던 편지들처럼 ‘사랑을 가득 담아!’
작가노트
호작
호작이라는 단어는 호작질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호작질은 경상도 사투리로 다소 쓸모 없는 창작활동을 지칭한다. 하지만 호작질을 통해 느꼈던 성취감과 삶의 방향성 같은 쓸모 있는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는 호작질을 통해 사소하지만 특별한 호작스러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에 가득 이야기를 채워 전달하는 호작질인 ‘편지 ’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았다.
편지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편지라는 작은 종이는 시간이 지나도 소중하고, 오래된 인연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만든다. 내가 편지를 간작하는 이유는 정성스러운 글에 담긴 당시의 나의 모습과, 정성스레 편지를 쓴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서 인 것 같다. 그 시절에만 주고받을 수 있던 모습들이 가득히 담겨 있는 지나간 시간의 물건이라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때의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글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으로 다시 그려낸 후 실크스크린을 통해 한겹한겹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고 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늘이 가끔 꺼내 읽고 싶은 편지 같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정우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틋함이 묻어있다. 스치듯 지나버린 풍경과 사물, 그 사이사이마다 들어 찬 공허한 유한성은 앞으로 다가올 또 하나의 이별을 상기시키며 연민의 감정을 가져온다. 애틋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이지만, 경험했던 애틋함 안에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를 보태어 무엇이라도 더 주고 싶은 순수한 사랑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Dear’, ‘편지들’, ‘못 줬던 편지’ 3가지 구성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Dear>에서는 편지를 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았고, <편지들>에서는 수집함에 있던 편지들을 하나하나 답장하듯 그려나갔다. 내가 지난 시간 받았던 마음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최대한 받았던 사랑의 다양한 형태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못 줬던 편지>에서는 부끄러움과 자존심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 했던 파란색 편지를 앞세워 나의 오래된 후회와 애틋함을 말한다. 제때 먹지 못해 물러버린 과일처럼 변했지만, 개미가 한 조각씩 옮겨가면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사랑이 틔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어느 순간이든 진심 어린 고백을 떠올리면 애틋하다. 그 고백은 많이들 편지에 담겨있었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첫인상,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일종의 반성과 후회 등을 보고 있으면 글쓴이의 시간과 정성이 애틋한 만큼 아껴주고 싶다. 고요하게 수집함에 있던, 가볍든 무겁든 절대 버릴 수 없는 마음을 모아 이제서야 그림으로 나의 마음을 전한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돈의문 스튜디오
<사랑은 ♡모양이 아니다> 展
호작 x 정우물 2인전
2024.05.14-06.30
전시서문
<사랑은 ♥모양이 아니다> 전시는 호작과 정우물 두 작가가 각자 받았던 편지들을 꺼내보며 다시 한번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되짚어 본다. 보통 사람의 심장 모양을 닮은 ♥모양을 사랑으로 표현하지만,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편지의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상상을 그림 속에 담았다.
편지는 인스턴트 메신저처럼 간단하지 않다.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솔직한 감정을 편지에 담기 위해 한줄 한줄 고심하는 과정을 거친다. 편지에 담긴 내용은 고민을 거쳐 수정되고, 정돈되어 만들어지지만 안에 담긴 것은 진심이 가득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시시콜콜한 말들을 쓰고 나름대로 꾸미고 접어 전달한 작은 마음부터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장문의 편지까지, 편지를 매개로 받았던 사랑을 <사랑은 ♥모양이 아니다> 전시를 통해 답장한다.
우리가 받았던 편지들처럼 ‘사랑을 가득 담아!’
작가노트
호작
호작이라는 단어는 호작질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호작질은 경상도 사투리로 다소 쓸모 없는 창작활동을 지칭한다. 하지만 호작질을 통해 느꼈던 성취감과 삶의 방향성 같은 쓸모 있는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는 호작질을 통해 사소하지만 특별한 호작스러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에 가득 이야기를 채워 전달하는 호작질인 ‘편지 ’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았다.
편지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편지라는 작은 종이는 시간이 지나도 소중하고, 오래된 인연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만든다. 내가 편지를 간작하는 이유는 정성스러운 글에 담긴 당시의 나의 모습과, 정성스레 편지를 쓴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서 인 것 같다. 그 시절에만 주고받을 수 있던 모습들이 가득히 담겨 있는 지나간 시간의 물건이라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때의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글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으로 다시 그려낸 후 실크스크린을 통해 한겹한겹 쌓아올려 작품을 만들고 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늘이 가끔 꺼내 읽고 싶은 편지 같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정우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틋함이 묻어있다. 스치듯 지나버린 풍경과 사물, 그 사이사이마다 들어 찬 공허한 유한성은 앞으로 다가올 또 하나의 이별을 상기시키며 연민의 감정을 가져온다. 애틋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이지만, 경험했던 애틋함 안에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를 보태어 무엇이라도 더 주고 싶은 순수한 사랑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Dear’, ‘편지들’, ‘못 줬던 편지’ 3가지 구성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Dear>에서는 편지를 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았고, <편지들>에서는 수집함에 있던 편지들을 하나하나 답장하듯 그려나갔다. 내가 지난 시간 받았던 마음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최대한 받았던 사랑의 다양한 형태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못 줬던 편지>에서는 부끄러움과 자존심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 했던 파란색 편지를 앞세워 나의 오래된 후회와 애틋함을 말한다. 제때 먹지 못해 물러버린 과일처럼 변했지만, 개미가 한 조각씩 옮겨가면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사랑이 틔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어느 순간이든 진심 어린 고백을 떠올리면 애틋하다. 그 고백은 많이들 편지에 담겨있었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첫인상,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일종의 반성과 후회 등을 보고 있으면 글쓴이의 시간과 정성이 애틋한 만큼 아껴주고 싶다. 고요하게 수집함에 있던, 가볍든 무겁든 절대 버릴 수 없는 마음을 모아 이제서야 그림으로 나의 마음을 전한다.